<톡톡! 김혜영의 특별기고> 지금의 과학고는 과연 창의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

<특별기고> 지금의 과학고는 과연 창의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
- 영재‧과학고 축소, 비교내신제 도입, 커리큘럼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
기사입력 2020-02-17 오후 4:52:00 | 최종수정 2020-02-24 오후 4: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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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혜영 시니어벤처협회 부회장

 

최근 조국 전 장관 자녀 부정입학 의혹을 계기로, 교육감들이 교육평준화 주장에 열을 올리는 듯하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자사고, 외고와 함께 국제중 폐지를 고민해야한다”고 했고,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영재고, 과학고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적으로도 자사고, 외고 등의 특수목적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교육부 결정 때문에도 교육계가 찬반으로 시끄럽다.

 

기술기반의 미래먹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과학고, 영재고의 인재 육성만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영재고, 과학고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현재 28개의 영재고·과학고의 숫자는 적당한가?’, ‘과학고에 다니는 학생은 모두 영재인가?’, ‘영재인줄 알고 선발된 학생들이 입시목전에 와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은 고사하고 지방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져보게 되며, 이에 따른 부작용과 해결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와 절친인 과학고 자녀를 둔 학부모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한다. 그의 아들, A군은 지난 12월 ‘KAIST 입학’을 부모에게 선물했고, 2020년 1월, 과학고 졸업식에서 2개의 대표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A군이 여기까지 오게 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학부모가 알려준 A군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지난 3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만감이 교차됩니다. 남들은 과학고에 들어갔으니 서울대, KAIST 진학은 문제없다며 다 된 밥상인양 말하곤 했지만, 3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복잡한 입시제도에 제가 대응하기에는 힘들었지요.”

 

국내 과학고 학생의 평균 약 30~40% 정도만이 서울대,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나머지 60~70%는 그냥 ‘in Seoul’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명문대학교로의 진학에 있어서 내신이 가장 큰 요인이므로, 내신 상위 30% 안에 들기 위해 과학고 학생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지, 학생들은 모든 과목들에 대해 학교가 요구하는 어려운 수준의 공부를 어느 정도까지 감내해야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A군을 지켜본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학생들이 수학을 비롯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이 주요 5개 과목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이들의 자율성과 시간 그리고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청춘을 반납해야 했어요.” 

 

과학고 학생들은 고등학교 1, 2학년 기간 동안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과목에서 고교 3년의 과정 그리고 대학 1, 2학년 수준의 학습량과 과제가 요구된다. 전공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대학 입학 후엔 거의 필요 없는 과목들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학고 학생들에게 당연히 TV, 유튜브, SNS, 게임을 해서는 안 되었고, 악기연주, 운동 등의 취미생활은 사치다.

 

A군의 경우, 고 2때 과도한 스트레스로 기타연주와 농구에 몰입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았다고 한다. 그 결과 성적은 상위 20%에서 50%로 곤두박질쳤고, 매일 많은 공부와 과제 양에 허덕이며 과제 제출날짜가 다가오면 밤새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물론 능력이 탁월한 소수 몇몇 학생들은 쉽게 해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위 자타가 인정하는 영재였던 A군의 경우가 이러한데 나머지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결과, A군은 학교에서 주어지는 책, 과제 이외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를 찾아서 하는 일이 없어졌고, 웃음도 잃어갔다. 무엇보다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본인이 왜 이렇게까지 공부해야하는지 모르겠고,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그 학부모는 억장이 무너져갔다고 한다. 학교와 학원 수업만으로도 A군에게는 과부하였던 것이다.

 

혹자는 과학고·영재고 학생들은 국가미래를 위해 발탁된 학생들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국비보조를 받아가며 양질의 수업과 실습을 하고 있으니, 그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맞고, 학생들의 역량이 충분하니 교육 커리큘럼 강도를 계속 더 높게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KAIST에 입학한 A군의 여정을 듣고 나니, 영재 학생들을 위한 현행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도대체 이토록 강도 높은 커리큘럼들은 단순히 내신 줄 세우기를 위한 것인지, 어느 과학고 출신이 잘하더라는 말을 듣기 위한 학교의 대학입시 TO 확보 차원인지, 과학고 학생이라면 마땅히 이 정도의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필자가 보기엔 과학고 학생 모두가 KAIST에 진학한다 할지라도,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는데 문제가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다. 이렇게 단련된 학생들 중 40%(1~4등급)만 서울대, KAIST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필자는 과학고 상위 40% 안에 들기 어렵다면 자사고, 일반고에의 진학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1~2등급의 좋은 내신 성적으로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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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 보자. A군과 동년생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는 B군의 이야기다. 미국 고등학교의 경우, 사춘기라는 혈기왕성한 시기를 배려해서인지 운동과 예능을 강조한다. 그 결과 B군은 공부뿐 아니라 학교에서 테니스선수, 수영선수로서 운동을 열심히 하였고,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켜고, 일요일엔 교회에 나가고 봉사함으로서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학교에서 대학의 과정을 미리 시키지 않으니 과도한 스트레스가 없이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합격하였고, 결국 스탠포드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였다.

 

필자는 B군이 A군보다 더 똑똑한 학생이어서 스탠포드에 진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만약 A군이 우리나라 과학고에서 배우는 이 어려운 과정의 수업 없이 스탠포드에 들어갔다해도 이 대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를 잘 해낼 것이고, 거기에서 잠재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즉, 고등학교에서 고강도의 대학교육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대학에 진학 할 수 있고, 건강한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으니, 더욱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나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영재고 8개교(2,506명), 과학고 20개교(4,396명), 총 6,900여명의 영재·과학고 재학생 중,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2, 고3학생 약 3,000여명의 인재들이 KAIST와 서울대 수시에 원서를 넣는다. KAIST의 경우,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 550명을 최종선발 하는데, 영재고 과학고를 제외하고도, 자사고, 일반고의 학생들도 같이 이 전쟁에 뛰어든다. 즉, 영재·과학고를 제외한 나머지 전국 2328개의 고등학교에서 1명만 KAIST에 응시한다고 가정할지라도 KAIST 입학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 한국교육개발원〈2019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전체 고등학교 수는 2356개. 이 중 영재고는 8개, 과학고는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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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8개교로 늘어난 영재·과학고 덕분에, 전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영재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영재가 아닌 학생들이어도 초등 저학년부터 조기과외를 시작해 중도포기만 안하면 영재가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전문 입시 학원의 스펙쌓기와 특별 맞춤형 과외는 자녀를 영재로 둔갑시킨다.

 

사교육은 자녀가 천재인줄 아는 부모를 설득해 아이들을 초등 저학년 때부터 학원을 보내게 만들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 혹사’를 당한다. 만약 영재·과학고가 축소된다면, 입학 문턱이 좁아지게 되니 진짜 영재 학생 또는 스스로 학업 의지가 있는 학생들만 도전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영재·과학고 진학목표를 세우지 않게 될 것이고, 더불어 조기과외 열풍은 식으리라고 예상한다. 매년 약 2500명의 영재·과학고 신입생 수가 갑자기 1000명으로 줄었다고 가정해보자. 학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자하게 마련이고, 가능성이 희박하다 판단되면 자녀의 진로를 선회하게 되어있다. 즉, 영재·과학고의 축소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모든 고민거리인 초·중·고 과외열풍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한 셈이다.

 

과학고는 1983년도 경기과학고등학교 1개로 시작해, 84년도 경남과학고, 대전과학고, 광주과학고가 문을 열고, 필자가 KAIST에 입학한 88년도에 대구과학고가, 그리고 89년도에 충북과학고, 서울과학고가 문을 열어 80년대에는 전국에 총 7개의 과학고가 있었다. 이 학생들에게는 내신 1등급이 주어졌고,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에 신경쓰지 않고 실험과 과제에 집중하며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과학고의 총 학생 수가 적어서였는지 시험을 보고 한국과학기술대학 (일명, ‘과기대’ 이후 ‘KAIST’로 개명됨)에 입학했음에도, 과학고 학생들의 90%는 KAIST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과학고 입학=KAIST 입학’이라는 공식이 매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공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필자의 KAIST 동기는 자녀의 대학진학을 고려해 일반고로 자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들으니 일리가 있다. 자녀를 과학고에 입학시키려는 노력, 과학고 안에서 해내야하는 학습량, 난이도 등을 고려할 때, 과학고가 명문대 진학의 통로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과학고등학교 시스템은 대학진학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과학고들 사이에서도 소위 명문대학의 TO를 더 많이 받기위해 더욱 강도 높은 커리큘럼으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러는 사이, 주어진 시간 내에 이 모든 것을 해내야하는 과학고의 청춘들에게는 공부가 더 이상 재미있는 학문이 아니게 되고, 우수한 친구들에 밀려 7~9등급의 성적을 받게 되는 학생들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성적에 자존감을 상실한다.

 

또, 장기전으로 가야할 공부가 대학 입시라는 단기적인 목표가 달성되면,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을 놓아버리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현행 과학고의 강도 높은 커리큘럼이 영재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자율의지를 없애고 창의력을 삭감시키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정부 당국은 알고 있을까?

 

이에 필자는 국가 인재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영재·과학고 숫자를 현행의 반 이상으로 축소시켜야한다고 과감히 주장한다. 이로 인해 조기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고, 진정한 과학영재들이 선발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선발된 학생들에 대해서는 비교내신제를 실시해 학교내신으로 인한 입시 불이익을 없애주어야 한다. 또한 과학고의 강도 높은 커리큘럼을 완화하여, 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도한 학습량과 성적 스트레스에 의해 심신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과 학부모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청춘 영재들이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과학인재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정부는 대학입시제도 개편과 동시에 영재·과학고 커리큘럼 개편 등 실질적인 교육 정책의 근본적이고도 대대적 손질이 절실히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혜영 교수(sweetcandice@hanmail.net)


KAIST 신소재공학 전공 학·석사학위를 받고 KAIST홍보이사, KAIST입학사정관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엠지텍 부사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 잉글리쉬나라 대표, 용인시디지털산업진흥원 창업지원센터장을 역임했다. 용인 관내기업의 창업지원 및 용인시 초·중·고 IT/SW코딩교육을 총괄 운영했으며, 현재, (사)시니어벤처협회 부회장 및 4차 산업혁명 강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사제공 : 주간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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